총 평점 : ★★★☆☆
연기력 : ★★★☆☆
스토리 : ★★★☆☆
연출력 : ★★★☆☆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다 예민한데.
어릴적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매력이 서양 영화에는 있었다. 현실감. 배우의 대사와 노래 말고도 존재하는 작은 바스락소리, 정말 낡은 찻잔, 보기에도 헐거워보이는 창틀.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려주는 연출에 별 특색이 없는 내용이라도 더 집중하곤 했었다.
어릴적엔 뭐든 나한테 가하는 규율이 엄격했다. 영화는 한번에 앉은 자리에서 다 봐야하고. 시작부분부터 못보고 중간 부분을 먼저 보게되면 그 영화는 못보는 영화였다. 그때의 나에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보라하면, 결국 다 못봤을꺼다. 이 영화는 다 보는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조금 보다가 끄고, 또 문득 생각이 나면 보는 식으로 끝까지 보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서 약간 아이보리빛을 띄는 천을 걸어 놓고, 빔프로젝터로 쏘아 본다면 딱 적절한 영화다. 잔잔하지만 바스락거리고, 집중하게 하는 영화. 다만 아쉬웠던 점은, 여자주인공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찾아나가는 부분이 다소 어색함이 있었다. 생면부지의 여인이 찾아와 당신의 가장 아픈 부분을 꼬치꼬치 캐물어보는데, 술술 얘기해주는 북클럽 회원들을 이해하기엔 개연성이 약간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건지섬에 오자마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라니 2018년에도 어울리지 않지만, 전쟁 후인 영화 속 사정에는 더더욱 맞지 않다. 아멜리아의 성격도 좀 과하게 딱딱하다. 상처가 많은 사람임을 알지만, 좀 전형적인 딱딱함이었다. 마치 한국드라마에서 상처많은 부잣집 남자를 볼 때마다 느끼는 지루함이랄까. 느긋하게 쳐지려는 몸을 움찔하게 만드는 두어가지 소소한 불편함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딱 설명할 깜냥은 안되지만,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 둘의 사랑이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포근하고 든든한, 사랑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사랑. 처음 볼 때부터 둘이 사랑하게 될거라 생각했는데, 별 방해나 어려움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 모든게 맞아떨어지는 행운으로 행복한 둘이 되는거, 내가 바라는 것이다. 흔한 소재를 풀어나가는 법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 전쟁, 가족은 수십세기 동안 고민을 멈추지 않은 인류에게도 여전히 비밀스럽고 가치있는 소재다. 이미 앞서서 혹은 뒤따라 올 수많은 전쟁, 사랑, 근대의 이야기 속에서도 꽤 오랫동안 오리지널같이 여겨질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리디자인 해본 포스터. 한국 공식 포스터는 없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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