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컨테이너 가건물인 적도, 할머니네 안방인 적도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는 부유했으나 좀 덜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가난하다. 한번쯤 있는 옛날에 우리 집도 부유했던 적이 있었다. 집에는 자가용이 있었고 어린 내가 엄마랑 같이 팔을 뻗어야 안을 수 있는 크기의 TV가 있었다. TV의 스피커는 서라운드 외장형으로 4개여서, 영화 속 주인공이 땅을 구르면 왼쪽에서 오른쪽 귀로 흙이 뭉개지는 소리가 움직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더 많은 날은 그렇지 못했다.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소리에 자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 벽에 발을 구르며 놀았다. 그러다 튀어나온 전선에 엄지발가락이 닿아 감전된, 짜릿한 가난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가난은 어떤 것일까? 오늘 하는 모든 이야기는 그저 나의 생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라 어리석을 수 있다는 말을 먼저 해야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난은 모든 것을 좀먹는 것이다. 삼키는 것도 무너트리는 것도 애매한 느낌에 좀먹는다는 표현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가난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당시에는 가난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는 거다. 이 모든 불행이 가난임을 말하는 순간 나는 지는 것이며, 가난을 '탓'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가난 때문은 아니었지만, 가난 때문에 아주 힘들었다. 내가 에디터를 꿈꾸겠다고 말했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비웃음에 맞서는 일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에디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주변에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을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뭉뚱그려 반응하곤 넘어갔다. 에디터가 되려면 패션디자인과보다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가 좋다든지,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는 사실상 체력과 센스의 싸움이라던지.. 그런 논의는 다음 단계의 이야기였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이 논의까지 도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가난은 다양성을 없앤다. 내 주위 대부분의 어른은 돈이 되는 일을 했다. 꿈이 되거나 삶의 원동력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심할 때는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잘 사는지만 알았다. 부영아파트에 사는지, 롯데캐슬에 사는지만 아는 '친구'도 흔했다.
100만원이 있으면 누군가는 디자인에 충실한 양말을, 누군가는 절대 해지지 않는 양말을 산다. 또또 누군가는 만원 안에서 양말은 해결을 보고 99만원을 통장에 넣는다. 그러나 3천원이 있으면 모두 지하상가에서 양말을 살 것이다. 그 와중에도 더 예쁜 양말을 고르고, 더 튼튼하고 두꺼운 양말을 고를 수는 있으나 모두가 3천원짜리고, 양말을 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양말을 신기 시작할 때부터 해지기 전까지 반드시 지인 한 명은 "3천원 양말 한 개를 살 바엔 더 모아서 3만원짜리 양말 사서 평생 신겠다."라는 말을 말이라고 하는 게 가난이다. 가난은 선택의 여지를 없앤다. 부자들이 성공하는 이유에 대해 수만권의 책은 이유를 분석한다. 남다른 관점이 있었다. 긍정적인 태도가 있었다. 신을 믿었다. 나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는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한다. 가난의 실패는 끝을 의미할 때가 많다. 내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솜씨가 있든 없든 우리는 1000번을 도전하면 누구나 1번은 성공할 수 있다. 가난은 1000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횟수를 셀 여지도 없이 오늘이 아니면, 이번이 아니면 모든 것이 실패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굴레 안에 갇히기 쉽다. 가난은 다양성을 좀먹고, 생각을 좀먹는다. 재도전의 여지가 없어서 우리는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한다. 퇴근 후 너무 지쳐서 먹은 맥주 한 캔의 후회가 몇 분일지, 며칠의 굶주림 일지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가난이다.
.. 이렇게 생각했지만, 어느 날 어떤 사람이 SNS에 이런 글을 쓴 걸 보고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누구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라는 이유가 붙는다." 사실 다양성이 부족한 주위 환경은 가난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다. 부유한 집안이지만 수 대를 걸쳐 군인만 해온 집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집 아들은 'Fashion Editor'라는 영어단어가 누군가의 꿈일 줄 모르고 평생 살 수 있다. 가난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다지만, 나는 어쩌면 가난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어리석은 선택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와 같은 말일 수도 있는데.
조금 돌아와서, 가난하면서 패션을 사랑하는 내 이야기를 해보자. 솔직히 말하면, 가난과 패션은 같이 들고 있기 벅차다. 세상에 초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사랑스러운 옷들은 돈이면 우리 집 앞에 온다. 옷을 사랑할수록 20만원짜리 기본 미색 니트를 사서 오래 입는 것이 질적으로, 미적으로도 이득임을 알게 된다. 다 알면서도 2만원짜리 '지그재그'(온라인 쇼핑몰 통합 어플) 산 니트를 사게 되고, 희대의 역작같이 느껴지는 옷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옷을 계속 사랑하기란 참 지치고 우울한 일임은 맞다. 나 역시 그런 허망함에 패션을 아득히 먼 곳으로 여기는 때가 길게 있었다. 다만, 계속 사랑하다 보니 단계를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어쨌든 옷이 많은 사람이 옷을 잘 입나? 그렇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패션이야말로 과학이나 기술 같이 명확하지 않기에 더 많은 갈래의 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빈티지, B급 의류, 비건 레더, 웰론, 재사용 소재 안에 패션의 도덕성만 있진 않다. 사실은 신상이 가장 아름답고 갖고 싶지만, 도덕성을 높게 쳐줘 빈티지에 손뼉 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한 개의 코트를 사랑하는 것. 부평 지하상가에서 질 좋은 바지를 골라내는 것. 이미 유행이 지난 네오플랜 맨투맨을 버리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났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원래부터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겐 촌스러워도 내겐 아름답고 소중해서 입고 나서고, 잘 쓸어서 다시 커버를 씌워 놓는 것. 그것이 패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돈이 있어야 이 모든 시작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돈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나아가 돈은 우리가 패션을,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저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옷을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도 끊임없이 외쳐주고 싶다. 결코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누구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라는 이유가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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