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평점 : ★★★★☆
연기력 : ★★★★★
스토리 : ★★★☆☆
연출력 : ★★★☆☆
어디까지를 세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상상이 하나있다.
내가 어떤 장소를 벗어나면 그 곳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도, 우리집 강아지도, 행인도 다 NPC이고 세상에 내가 주인공이어서, 내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고 멈춰있는 세상.
이런 상상은 즐겁다기 보다 늘 오싹했다.
잭에게 밖이란 이런 느낌이었을까.
오싹거리지만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나는 잭의 울음을 한순간도 이해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보는 것, 내가 아는 것들이 부정당하는 상황은 몇살이든 가혹하다.
최근에 한 만화를 봤다.
조카들이 열심히 의사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쇼파에 앉아 귀엽다, 잘하네 하며 웃고 있었단다.
자기도 같이 이쁘다 하며 웃다가 문득 둘째 조카를 유심히 봤는데, 엄청나게 진지한 모습에 그 사람은 뭔가를 깨달았다.
우리가 어려서 귀엽다하며 웃어넘기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늘 진지하다는 것이다.
지금이 처음이고, 실제이고, 아이의 삶이라는 것을.
자기는 더이상 아무생각없이 웃을 수 없어졌다 했다.
몇 살이든, 우리는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캐릭터는 치가 떨리게 싫어하시던 엄마에게 핑크색 불빛나는 운동화를 사달라고 용기내어 말하던 그 순간.
그 때를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진지하고 필사적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살아가고 있다는 건 결국 진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잭의 울음을 절대 '어린아이의 눈물'로 볼 수 없었다.
사실 영화 속 잭은 울음을 넘어 '절규'한다.
밖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을 보기 위해 잭이 뭔가를 해야만 할 때.
다들 속으로 삼키는 울분을, 두려움을 잭은 그저 소리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잭과 조이는 세상에 덜 굴려져서 다만 표현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내가 이 영화에 큰 점수를 주고싶은 것은 상황이 중심이고, 사건해결이 전부인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잭이 엄마를 구해내는 장면은 초반 20분대에 끝난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연출이다.
긴박하고 떨리는 20분이 지나면 잭과 조이는 세상에 나와서도 세상에 나오려 노력한다.
따뜻한 이웃, 햇살, 냉담한 질문들에 맞서는 것은 방을 나오는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는 와중에 잭도, 조이도, 할머니도, 모두 실수한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가끔 현실의 냉담한 문제에 부딪힐때면 잭은 '방'을 찾기도 한다.
우리가 좌절해 도망치려하는 순간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 영화는 피해자를 구걸시키지도, 불쌍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잭과 조이가 세상에 나오고 다시 닉이 둘을 뒤쫓는 숨막히는 액션도 아니다.
담담하고 치열하게 싸운다.
실화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실존하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조심스럽고 예의있어야만 한다.
한국의 암수살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고문을 하듯 그들을 샅샅이 벗겨 상처내고 칼집내서 토해나오는 이야기는 괴롭다.
우리는 이야기를 꺼내준 그들을 공경하고 정중히 대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들이 꺼내고 싶을 때 꺼내야 한다. 우리가 기록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아픈 이야기는 소중한 친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한다.
나는 10년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4살이 되고 싶다던 5살의 잭보다 겁먹고 숨은 적도 많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든지 내 아픔을 선뜻 이야기해준 두 인물과
연출과 연기에 정중함을 버리지 않은 제작진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아주 훌륭한 작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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