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호인데 4월 1일이 되어서야 읽었다. 3월에 뭐에 홀린건지 패션 잡지를 3권이나 샀기 때문도 있고, 자격증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핑계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마리끌레르를 구매한 이유는 커버에 있다. 형광빛 타이틀과 공효진. 언제나 매력적인 그녀의 주변에 나열된 불편하지 않은 문장들을 본 순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호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책. 시작을 여는 편집장님의 말부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장으로서 '육아휴직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휴직 후 당신은 지금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겠다는 글. 점점 패션 잡지들이 페미니즘의 논조를 외치긴 했으나, 편집장이 이런 말로 잡지를 여는 시대가 오다니. 새삼 감개무량해 잠시 침묵했다. 원래 마리끌레르는 시즌별 패션쇼를 잘 정리한 부록이 등장할 때만 구매했었는데, 학창시절부터 엄마 눈치를 보며 모으던 것들이 이제는 꽤 부피가 크다. 그래서 내게는 추억이 있는 잡지이기도 하다.

 이번 19년도 3월호는 창간기념호였는데, 그래서인지 서정적인 목소리가 강했다. 창간기념호 다운 두께와 분량에 하루종일 매달려 줄을 쳐가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그 달의 잡지는 1개씩만 구매하던 것과는 다르게 3개를 구매했는데, 마리끌레르의 내용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모노톤으로 잘 써놓은 글에 아름다운 화보, 예쁜 의도가 더해지니 좋지 않을 수 없다. 어줍잖게 남성의 목소리를 끼우지 않은 점. 명예 남성을 언급한 인터뷰.. 꼼꼼히 읽으며 맞다, 그랬었지 소리를 절로 중얼거리게 만드는 튼실한 내용이었다.

 


아쉬운점

  이번호는 20명이 넘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을 묻는 기사가 가장 메인인 듯 했다. 기획의 의도는 좋았으나 정형화된 질문으로 수십명을 인터뷰하니 조금 긴 느낌이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이라는 굵은 텍스트를 둘러싼 수많은 인터뷰이의 답으로 마인드맵 모양의 레이아웃을 짰다면 더 읽기 쉬웠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이번호에는 디올의 옷이 유독 여러번 겹쳐 등장했다. 물론 디올은 사랑스럽지만!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아닐까? 디올의 19년 ss를 충분히 감상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자. 

 

 

 

 잡지를 오랫동안 보니까 '저런건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고, 갑자기 내가 잡지계 혁신을 이끌 방법을 찾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적을 정도로 고치고 싶은, 잡지에 너무 많은 외래어와 외국어. 코팅지 특유의 냄새(이부분은 많이 개선된 것 같다.)에 이어서 오늘은 사진과 텍스트(캡션)간 멀고 먼 거리가 아쉬웠다. 놓치는 것 없이 다 읽으려다보니 3번 치마..4번 바지..하며 손가락을 쭉- 제품 사진에서 문장으로 끄는 건 50쪽 안에 지치고, 결국 대충대충 읽게 되기 때문에.

내가 책임지는 지면이 생긴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나일론 4월호 스트릿 기사를 개제한 류용현 에디터를 비판합니다.

 평소 나일론의 문체답고 서정적인 기사와 인터뷰를 사랑하고 자랑하던 독자 중 한명입니다. 어떤 잡지를 살지 고민하는 지인들에게는 서슴없이 '나일론'을 추천하던 제가 4월호를 읽은 지금, 저를 믿고 잡지를 구매하고 구독하던 지인들에게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4대 패션쇼의 스트릿 패션을 취재한 기사가 문제였습니다. 스트릿 패션의 가벼움과 젊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레이아웃과 코멘트, 분위기 모두 다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즐겁게 읽어나가던 글이 중반부 부터 제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실껍니다. 조금만 튀는 패션으로 나서도 따라붙는 시선과 말들. 그것이 여성일 경우에는 정도가 과격한 일이 허다했습니다. 저 역시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숱하게 길에서 겪어온 '이성의 잣대'를 본 기사에서 느꼈습니다.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부터 정확히 류용현 에디터가 작성한 기사였습니다.
"은근한 섹시미를 강조한 여인. 하지만 제 눈엔 아닌 것 같아요."
"딱 제 이상형입니다!"
"본인이 애연가이기 때문."
 이 외에도 사진으로 추측하는 멘트들은 그 에디터가 남성임을 인지하기 전부터 길에서 던지는 추파와 같이 깊이가 없었습니다.
 나일론이 추구하는 패션은 무엇인가요? 각자가 원하는 옷, 원하는 무드를 연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닌 획일화되고 유행에 맞는 패션만 추구하십니까? 아니라면 이는 패션 뿐 아니라 기사의 멘트에도 주의를 요구해야하는거 아닐까요?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내가 좋아하고, 다수가 좋아하는 것을 기본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고려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류용현 기자의 코멘트는 전혀 독자들에게 도움도 즐거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과반수가 여성으로 구성된 나일론 사측에서 이러한 내용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은 것도 사실 놀랍습니다.
 혹여 에디터가 남성이라서 제가 이 멘트에 불쾌해한다는 생각이 있으시다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처음엔 에디터의 성별을 모른채로 읽어내려갔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미투를 지지하는 기사와 젠더감수성이 없는 기사가 공존하는 나일론에게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당신들에게 미투운동과 같이 최근 사회에서 각광되는 운동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매거진이 가져야할 무게감 조차 지니지 못한 4월호의 나일론은 그야말로 실망이었습니다. 나는 이 글을 4월호를 구매한 즉시 썼다가 나 스스로 감정적이고 무이성적으로 썼을까 고려해 퇴고하여 지금 게시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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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를 꿈꾸는 학도로써, 보그의 21주년 8월호를 사지 않을 수 없다.
두산매거진의 탄탄한 바탕은 보그가 21주년 동안 '보그다움'을 만들고 유지시키는데 큰 힘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특별하고 소중한 부록을 위해 얇게 제작될 수 밖에 없었던 표지의 재질에 받는 순간 웃음이 났다. 늘 여유롭고 체에 거른 모래처럼 걸림없게 느껴져 '잘사는 언니'같은 느낌에서 한계단 내려온 것 같달까.
잡지의 재질과 여유없는 타이핑은 늘 내게 아쉬움이자 안타까움이였다. 21세기가 되도록 빳빳하고 광택나지만 화학적 냄새가 나지 않는 제지가 개발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번 보그의 8월호는 유기적이였다. 하나의 큰 책을 보듯, 셀럽과 모델들이 어릴적만든 색종이 고리들처럼 제 색들을 유지하며 하나의 줄을 만들었다. 유아인의 인터뷰잉, 오랜 시간 패션계에 숨쉬던 장윤주, 송경아..
모두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수도 뺄수도 있는 절묘한 섭외였다.
보그는 과거 - 현재 - 미래순의 한편의 훌륭한 잡지를 만들어냈다.신진 모델이 보그의 표지모델이 된 자신이 프린팅된 옷을 입고 찍은 화보로 보그는 그들이 아닌 자신들의 '미래'를 이야기 한듯했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표지가 만들어 지기에는 '21주년'이라는 묵직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나 싶어 좀 아쉽기도 했다만.
잡지의 오랜 변비같은 문제인 '남자같음'과 '여자같음'은 여전히, 한국어로 할 수 있는 것도 영어로 바꾸고야마는 워딩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상당부분 발전했음은 볼 수 있었다.
가장 마음을 때린 아모레의 1세대 방문 판매원 ㅁㅁㅁ님의 화보.
혁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진부한 혁신일때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인데, 화보는 성공적으로 혁신이였다.
스타일링은 어떤 페이지든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웠고, 텍스트는 한국인 특유의 소심하고 안정적인 추구를 벗어나 꽤 직설적이고 실험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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